[좋은시] 윤동주 - 편지

Posted by Bok_bi
2023. 2. 9. 17:14 카테고리 없음

 편지 

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윤동주

 

 

 누나!

 이 겨울에도 

 눈이 가득히 왔습니다.

 

 

 흰 봉투에

 눈을 한 줌 넣고

 글씨도 쓰지 말고

 우표도 붙이지 말고

 말쑥하게 그대로

 편지를 부칠까요?

 

 

 누나 가신 나라엔

 눈이 아니 온다기에.

 

 

 

[좋은시] 황지우 - 한국 생명 보험 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

Posted by Bok_bi
2023. 2. 7. 20:16 樂/_詩

  1983년 4월 20일, 맑음, 18

 

 

  토큰 5개 550원, 종이컵 커피 150원, 담배 솔 500원, 한국 일보 130원, 자장면 600원, 미스리와 저녁 식사하고 영화 한 편 8,600원, 올림픽 복권 5장 2,500원

 

 

  표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

  준 청과물상 김정권(金正權)(46)

 

 

  령=얼핏 생각하면 요즘

  세상에 조세형(趙世衡)과 같이 그릇된

 

 

  셨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생

  활 태도를 일찍부터 익혀 평

 

 

  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

  이다. 이원주(李元株) 군에게 아

 

 

  임감이 있고 용기가 있으니

  공부를 하면 반드시 성공

 

대도둑은 대포로 쏘라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-안의섭, 두꺼비 

 

 

(11) 제10610호

 ▲일화 15만 엔(45만원) ▲5.75캐럿 물방울 다이아 1개(2천만원) ▲남자용 파텍 시계 1개(1천만원) ▲황금 목걸이 5돈쭝 1개(30만 원)▲금장 로렉스 시계 1개(1백만 원)▲5캐럿 에메랄드 반지 1개(5백만 원) ▲비취 나비형 브로치 2개(1천만 원)▲진주 목걸이 꼰 것 1개(3백만 원) ▲라이카엠 5 카메라 1대(1백만 원) ▲청자 도자기 3점(시가(市價) 미상) ▲현금(2백50만 원)

  너무 거(巨)하여 귀퉁이가 안 보이는 회(灰)의 왕궁에서 오늘도 송일환 씨는 잘 살고 있다. 생명 하나는 보장되어 있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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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좋은시] 이재무 -엄니

Posted by Bok_bi
2018. 1. 23. 20:28 樂/_詩

 

 

 

 엄니

 

 

 

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재무

 

 

 

 마흔여덟 옭매듭을 끊어버리고

 

 다 떨어진 짚신 끌며

 

 첩첩산중 증각골을 떠나시는규

 

 살아생전 친구 삼던 예수를 따라

 

 돌아오리란 말 한 마디 없이

 

 물 따라 바람 따라 떠나시는규 엄니

 

 가기 전에 서운한 말

 

 한 마디만 들려달라고 아부지는 피울음 쏟고

 

 높은 성적 받아왔으니

 

 보아달라고 철없는 막내는 몸부림치유 

 

 보시는규, 모두들 엄니에게 못 갚을 덕을

 

 한꺼번에 풀고 있는 이웃들의 몸둘 바 모르는 몸짓들인데

 

 친정집 빚 떼먹은 죄루다

 

 이십 년 넘게 코빼기도 안 보이던

 

 막내고모도 갚지 못한 가난

 

 지 몸 물어뜯으며 저주하구유

 

 시집오면서 청상과부 울케에게

 

 피눈물로 맡겨놨다던 열 살짜리 막내삼촌도

 

 어른 되어 돌아오셨슈

 

 보시는규, 엄니만 일어나시면

 

 사는 죄루다 못 만난 친척들의

 

 그리움 꽃 활짝 필 흙빛 얼굴들을

 

 보시구서도 내숭떠느라 안 일어나시는규

 

 지축거리며 바람이 불고 캄캄한 진눈깨비 몰려와

 

 마루를 꿍꿍 울리는 동지 초이틀

 

 성성하던 엄니의 기침소리는

 

 아직 살아 문풍지를 흔드는데

 

 다섯 마지기 자갈논 가쟁이 모래밭 다 거둬들이던

 

 그 뜨겁던 맨발 맨손 왜 자꾸 식어가는규

 

 가뭄 탄 잡초 같은 엄니의 입술을 보며

 

 크고 작은 동생들 올망졸망 함께 모여서

 

 지청구 한마디가 듣고 싶은디

 

 왜 시종 말이 없는규

 

 궂은 날 지나 갠 날이 오면

 

 아들 딸네 집 두루 돌아댕기며

 

 손자손녀들 재롱 시중드는 게 소원이라시더니

 

 그 갠날 지척에 놔두시고선

 

 끝끝내 아까워 못 꺼내시던

 

 한복 곱게 차려입고서