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좋은시] 이재무 -엄니

Posted by Bok_bi
2018. 1. 23. 20:28 樂/_詩

 

 

 

 엄니

 

 

 

 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재무

 

 

 

 마흔여덟 옭매듭을 끊어버리고

 

 다 떨어진 짚신 끌며

 

 첩첩산중 증각골을 떠나시는규

 

 살아생전 친구 삼던 예수를 따라

 

 돌아오리란 말 한 마디 없이

 

 물 따라 바람 따라 떠나시는규 엄니

 

 가기 전에 서운한 말

 

 한 마디만 들려달라고 아부지는 피울음 쏟고

 

 높은 성적 받아왔으니

 

 보아달라고 철없는 막내는 몸부림치유 

 

 보시는규, 모두들 엄니에게 못 갚을 덕을

 

 한꺼번에 풀고 있는 이웃들의 몸둘 바 모르는 몸짓들인데

 

 친정집 빚 떼먹은 죄루다

 

 이십 년 넘게 코빼기도 안 보이던

 

 막내고모도 갚지 못한 가난

 

 지 몸 물어뜯으며 저주하구유

 

 시집오면서 청상과부 울케에게

 

 피눈물로 맡겨놨다던 열 살짜리 막내삼촌도

 

 어른 되어 돌아오셨슈

 

 보시는규, 엄니만 일어나시면

 

 사는 죄루다 못 만난 친척들의

 

 그리움 꽃 활짝 필 흙빛 얼굴들을

 

 보시구서도 내숭떠느라 안 일어나시는규

 

 지축거리며 바람이 불고 캄캄한 진눈깨비 몰려와

 

 마루를 꿍꿍 울리는 동지 초이틀

 

 성성하던 엄니의 기침소리는

 

 아직 살아 문풍지를 흔드는데

 

 다섯 마지기 자갈논 가쟁이 모래밭 다 거둬들이던

 

 그 뜨겁던 맨발 맨손 왜 자꾸 식어가는규

 

 가뭄 탄 잡초 같은 엄니의 입술을 보며

 

 크고 작은 동생들 올망졸망 함께 모여서

 

 지청구 한마디가 듣고 싶은디

 

 왜 시종 말이 없는규

 

 궂은 날 지나 갠 날이 오면

 

 아들 딸네 집 두루 돌아댕기며

 

 손자손녀들 재롱 시중드는 게 소원이라시더니

 

 그 갠날 지척에 놔두시고선

 

 끝끝내 아까워 못 꺼내시던

 

 한복 곱게 차려입고서